여행지 Review/여행에 관한 단상

나는 모르는 사람과 만날 용기가 있는가?

사막의 여우 2017. 2. 9.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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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르는 사람과 만날 용기가 있는가?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아주 매우 있다.

아마도 이 대답은 호기심 많은 남편을 둔 때문인 거 같다.

결혼 전 나는 어떠했는지?

적극적이진 않았어도 거부하진 않았던 거 같다.

결혼 후 우리는 여행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는 걸 즐긴다.

아이들은 아직도 아빠, 엄마가 본인들의 동의 없이 낯선 이들과  합석하는 것에 불편해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아이들도 점점 낯설어 하지 않고,

아마 어른이 되어서는 낯선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가족은 일정을 정해서 다니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의 대화에서 좋은 정보도 얻고 방금 그들이 다녀 온 곳에 대한 정보로 생각지도 않았던 곳으로 방향을 틀기도 한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여행에서 많은 낯선 사람들을 만났던 거 같다.

 

JR패스로 떠난 첫 일본일주 여행 중 홋카이도 작은 마을 쿠시로로 가는 중간 무인 간이역에서 만난 76세 나가사키에서 온 할아버지.

76세의 나이에 혼자 일본 일주 베낭여행 중이란다.

우리가 일본어를 잘  모르고 할아버지의 짧은 영어로 깊은 대화는 못했지만 우리의 다음 기차가 올 때까지 1시간 가량 대화를 나눴다.

우리의 JR패스 가격에 무진장 부러워 하셨고...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사시던 나가사키의  집을  팔아 정리하고 계속 여행 중이시란다.

그때 2달 째 여행 중이시라고.

일본 여행을 하시다가 용기가 생기시면 해외 여행을 감행해 보고 싶은데 아마 못할 거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때가 초겨울에 해질녘이었던 거 같은데 할아버지는 그날은 침낭을 갖고 그 간이역에서 주무실 거라고 했다.

우리가 갖고 있던 일부 간식과 물을 드리고 우리는 기차가 와서 떠났었는데 여행 내내 혹시 무슨 일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이 나기도 했지만 뉴스에 그런 기사가 안 나온 걸로 봐서는 잘 여행 다니신 거 같다.

 

쿠시로 호텔 야외족욕장에서 만난 쿠시로 초등학교 선생님들.

겨울방학이라 선생님들 워크샾.

모두  갓 대학 졸업한 젊은 선생님들 이었다.

족욕장에서 캔 맥주 하나씩 들고 이런저런 얘기 많이 했었다.

주로 우리가 질문하고 선생님들이 대답했던 걸로 기억한다

여기 대부분의 사람들이 쿠시로에서 태어나서 평생 홋카이도를 벗어나지 않고  산다는것.

도쿄를 가는 건 해외여행 가는 것만큼 쉽지 않은 일.

그나마 신혼여행이 홋카이도를 떠나는 유일한 기회

세상엔 이런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우리가 일본을 항상 경쟁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그들은 그다지 별 감정 없고 그냥 지역적으로 옆에 있는 나라라는 정도로만 생각하는 거 같았다.

그저 '윈터 세레나데'의 욘사마의 나라정도.

다음날 아침 호텔 조식뷔페에서 다시 만난 선생님들 너무 반갑게 모두들 인사를 건넸다.

심지어 말 한마디 않고 근처에 앉아만 계셨던 선생님들도.

우린 일본인들에게 기본적으로 적대감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소수 극우파의 일본인들과 달리 대부분 순수하고 친절하다.

최소한 내가 여행지에서 만났던 일본인들은.

요즘 일부 일본 정치인들의 극단 민족주의로 발상으로 말도 안 되는 행동에 불편하고 일본여행 가기가 두려워져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많이 안타깝다

 

2010년 여름  7,5살 두 딸과 유럽여행 중 잘츠부르크에서 할슈타트로 가는 기차에서 만난 70,71세 일본인 할머니 두 분.

친구사이란다.

창문을 못 열고 계시기에 다가가서 열어드렸더니 혹시 중국인인가? 하고 물으셨는데 한국인이라는 말에 얼굴에 만연한 화색이 돈다.

무지 반가워 하셨다.

두 분의 표정에서 중국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 챘다.

한국에는 엄청난 호감을…….

이유는 두 분 중 한 할머니가 말로만 듣던 열성 한류 팬 할머니였다.

우리 여행 중 이틀 전에 박용하 자살 소식을 듣고 거의 24시간째 내내 울고 식음을 전패 중이시란다.

다른 할머니가 알려 주신 상황.

70세의 나이에 좋아하는 연예인 자살 소식에 24시간 울고 계시다니 그런 열정이 부럽기도 하고 이해 안 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여행 일정이 하루 딜레이 되었고 같이온 친구에게 폐가 되니 할 수 없이 움직이는 중이란다.

서로 유럽 어디 어디 갔다 왔는지 얘기하고 갖고 있던 간식도 나눠 먹고... 우리 애들을 엄청 귀여워 해 주셨다.

할머니들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번 여행이 아마도 본인들의 마지막 여행일거라고...

백발의 두 친구가 멋져 보였다.

 

비에리에서 만나 대만 여대생 2,

우리는 JR패스로 삿포로 - 아오모리행 야간열차 하마나스 카펫 칸을 탈 계획이었으나 겨울 비수기라 또 삿포로가 좋으면 더 있을 계획이어서 예약은 안한 상태였다.

여성 전용 칸은 자리가 있는데 혼성 칸은 자리가 없단다.

그때  낮에 비에리에서 만났던 대만 여학생 2명이 생각났다.

우리와 같은 일정으로 하마나스 카펫 칸을 탄다고 했다.

혹시나 해서 삿포로 역을 열심히 뒤져 대만 여학생을 찾아내 우리의 사정을 이야기 하니 흔쾌히 혼성칸 표와 우리의 여성 전용칸 표를 바꾸어 주었다..

그 대만 여학생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남편은 밤새 일반좌석에 앉아 가고 나랑 큰딸만 카펫 칸에서 편하게.

아님 다 같이 좌석 칸에,

아님 삿포로에서 1박 더 였을 것이다.

머리가 복잡한 순간이었었다.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 여행 중 도움 받은 시애틀에서 온 여선생님 가족.

옐로스톤 국립공원 여기저기를 구경하다 해질녘에 우리의 베이스캠프인 캠핑장으로 돌아 가는 길에 타이어 펑크가 났다.

옐로스톤은 핸드폰이 안 터지는 곳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멈춘 곳도 인적이 드물고 핸드폰 먹통인 곳.

남편과 둘이서 솔직히 나 혼자 열심히 매뉴얼을 보며 스페어타이어로 교체 해 보려고 하는 중인데 렉서스는  보통의 차보다 훨씬 복잡했다.

그때 우리의 차는 렉서스 GX470이었다.

남편은 문과라는 명분하에 설계도 해독능력이 거의 제로다.

해는 점점 저물어 오고 지나가는 차는 없고 이러다 곰의 먹이가 될 거 같은 불안감이 몰려 올 때 차 한대가 멈춰 섰다.

자초지종을 듣고 걱정 말라며 뒤따라오던 일행 차를 세웠다.

남동생이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매머드 호텔에서 근무해서 여름 휴가차 누나인 초등학교 여선생님이 삼촌과 여행 온 일행이었다.

삼촌이 자동차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분이라 그 삼촌분이 우리 차 바닥에 들어가서 스페어타이어를 꺼내고 교체해 주셨다.

저녁을 사겠다는 우리의 제의도 사양하시고 선물이라도 보내고 싶다고 주소 알려 달랬더니 겨우 이메일 주소를 알려 주셨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었다.

그분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밤새 곰 울음소리를 들으며 차안에서 해 뜰 때까지 벌벌 떨며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오싹하다.

여행 다녀와서 몇 번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그 여선생님께선 그 상황에서 전혀 놀라지 않고 옆에서 풀 뜯으며 아무렇지 않게 소꿉놀이하던 우리 두 딸들의 멘탈에 대해 엄청 칭찬하셨었다.

인상적이라고 ... 그때  타이어 교체하고 있을 때 선생님은 우리 애들에게 다가가서 안정시키려고 하시는 거 같았는데 우리 애들은 그 상황에 개의치 않고 둘이 잘 놀고 있었다.

아마 초등학교 선생님이 이시라 아이들이 먼저 누에 들어 온 것일 것이다.

실은 우리 아이들은 처음 당하는 일이 아니라 또 우리 엄마, 아빠가 사고 쳤구나..

어찌 해결하겠지 였을 것이다.

숱하게 여행 다니면서 기름 떨어져서 차가 멈춘 경우도 여러 번,

배터리 방전된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니 그랬을 것이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은 그런 상황이 와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히 문제를 잘 해결 하거나

반대로 부모의 모습을 거울삼아 준비를 철저히 해서 그런 사태를 만들지 않을 것이니 애들한테 도움이 될 거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둘이서 해본다.

 

보라카이에서 만난 트라이시클 운전사와 그의 동생들...

20071월 보라카이.

매일 바다에서 노는 것도 조금 지루하고 하루 시내 투어를 하고 싶어서 대기해 있는 트라이시클 운전사와 거래를 해서 반나절 보라카이 섬 구경을 하기로 했다.

트라이시클은 오토바이를 개조해 뒤에 2명 좌석을 만든 동남아시아에  많이 있는 교통수단이다.

우리는 섬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박쥐동굴을 가자고 했다.

그런데 박쥐동굴을 가는 길에 10대 소년 2명이 트라이시클 밖에 매달려 탔다.

우리는 운전기사의 아는 동생인데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나서 태워 주나 보다하고 짐작만 했다.

이 동네스타일인가 보다 재미난 애들이다.

그런데 안 내리고 박쥐동굴까지 같이 가는 것이다.

박쥐동굴은 산위에 있어서 내려서 30분정도 산위를 걸어가야 했다.

산길이라 좀 험한데 남편이 안고 가는  3살 큰딸아이를 10대 소년 2명이 번갈아 가며 안고 올라가줬다.

난 솔직히 좀 내키지 않았지만 거기서 도와주겠다는 호의를 강하게 거절하기 약간 애매했고 그런 인종 차별적인 행동을 하는 게 옳지 않다는 생각에 불편한 마음으로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박쥐동굴에 들어 가다가 박쥐가 너무 많아 나, 큰딸, 운전사는 밖에서 기다리고 남편은 10대 두 명과 박쥐 동굴로 들어갔다.

엄밀히 말해 남편은 혼자 갔다 온다는데 그들이 은근슬쩍 따라 들어갔다.

동네 아이들의 호의인지, 돈을 요구할 수도 있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뭔가 찜찜한 상황이 계속 되고 있지만 말도 안통하고 먼저 돈을 요구하지도 않고 하니 그냥 상황에  끌려가고 있었다.

남편은 30-40분정도 걸려 동굴 구경을 하고 돌아왔다.

돌아가는 길에 10대 소년들을 집에 내려주는데 그들이 1인당 50달러를 달라고 했다.

보라카이에서 간단한 점심이 2-3달러,해변가 1시간 풀 마사지가 5달러 정도이니 꽤 비싼 가격이다.

남편은 보통 이런 경우 와이프가 논리적으로 따져 적당한 가격으로  해결하니 믿고(?) 뒤로 빠져서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심지어 너무 빡빡하게 하지 말라는 말까지 남기고.

아마 애들도 깎을 걸 생각하고 일단 크게 부른 거 같기도 했다.

근데 전혀 예상치 않게 난 두말 않고 1인당 50달러씩 줬다.

느긋하게 담배 피우면서 와이프가 어떻게 협상하나 지켜보던 남편은 '너 미친 거 아냐?'

이런 표정으로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보라카이 소년들은 갑작스런 횡재에 당황하면서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

물론 나는 평소 그런 불합리적인 상황에 절대 승복하지 않고 끝까지 따져 내가 생각하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결론짓는다

아마 한국, 미국 같은 나라였다면 당연히 그리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소년들이 사는 동네에 들어서는 순간 나의 원칙은 무너졌다.

그들이 사는 동네는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에 큰아이 또래의 동생  5-6 명이 눈이 또랑또랑하게 코 질질 흘리며 그 애들이 사는 동네가 세상의 전부인 냥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마당에 나와 놀고 있다가 오빠들을 반겼다.

그런 환경에서 저런 행복한 표정으로 서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많은걸 느꼈고  내가 정해 놓은 행복과 화폐의 가치는 그 순간 무너진 것 같다

50달러를 요구하는 그 소년들도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놈들 참!' 하며 기분이 묘하게 좋았다.

우리가 사라질 때 까지 손 키스 인사를 날리던 소년들의 가족들을  뒤로 하고 돌아가는데 눈물도 핑 돌았다.

평소 Dry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였기에 나 자신도 그 감정의 이유를 알거 같기도 하고 모를 거 같기도 했다.

남편은 왜 평소 같지 않은 행동을 하냐며 투덜투덜…….

일관성이 없다는 둥…….

거기에 한마디로 일축했다.

 " 다른데 아껴 써".

그리고 나는 나름 일관성이 있다.

남편이 내 기준을 모를 뿐이지.

나는 가끔 평소보다 과한 용돈, 경조사비 등 생각보다 과한 지출을 할 때 그 상황에 대한 합리화로 이 이론을 자주 내뱉는다.

"다른데 아껴 쓰지 뭐! "

그렇다고 그 금액만큼 다른데 신경 써서 절대 아껴 쓰지 않는다.

다만 내 손을 떠난 상황에 대해서  후회, 미련 이런 것들로 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을 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서 2년 살 때 오크클릭 아파트 메리 할머니, 릴리 할머니, 앨리스 등 아파트주민들,

나폴리 레스토랑 주인,

로마 호텔에서 만난 대학생,

이태리 시에나 식당에서 만난 벤쿠버 부부,

등등 여행 중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관광지보다 사람들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맛집,문화재,박물관,관광지 등등도 좋지만 이젠 거기에 사는 그들이 궁금해서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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